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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차사(使)는 咸:모두 다, 興: 일어날 흥, 差: 보낼 차, 使: 사신 사로 말 그래도 함흥(지역명)에 보낸 차사(관직 이름) 말하며,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없거나 회답이 오지 않음을 뜻할 때 쓰인다.

함흥차사(使) 유래 일화 이야기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에게는 부인이 둘 있었다. 첫째 부인은 아들 여섯을 낳았고, 둘째 부인은 아들 둘을 낳아 모두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다. 원래 대로라면 첫째 아들 방우가 세자가 되어야 하지만 방우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때문에 후계자를 누구로 해야 될지 항상 고민하였고, 신하들은 나머지 일곱 명의 아들 중에 능력을 따져서 세자를 세우자고 하였다. 다섯 번째 아들 방원은 자신이 정몽주를 죽이지 않았다면 조선이 설 수 없었을 거라 믿었고 세자가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태조는 뜻밖에도 방원 대신 둘째 부인의 아들, 여덟 명 중 막내인 방석을 세자로 세우겠다고 했다. 이방원은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 후 태조가 병이 났으니 모두 대궐로 모이라는 연락이 왔다 방원은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방석을 죽였다. 이것을 1차 왕자의 난이라고 불린다. 이후 둘째 아들 방과(정종)가 물려받았는데 허수아비일 뿐, 방원이 뒤에서 모든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에 넷째 방간이 왕위를 욕심내고 방원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러나 결국 방원에게 져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를 2차 왕자의 난이라고 한다. 결국 허수아비 역할만하던 정종은 방원(태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렇게 왕위를 두고 형제들끼리 피를 보며 싸우지 큰 충격을 받은 태조는 젊은 시절을 대부분 보냈던 함흥으로 길을 떠났다.  태종은 아버지를 다시 궁궐로 모셔와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차사라는 벼슬을 만들어 함흥으로 보냈다. 태조 이성계는 차사가 오면 말도 꺼내기도 전에 활을 쏘아 모두 죽였다. 이때부터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함흥차사'라 하였다. 

 

이처럼 함흥차사(使)는 심부름을 간 사람이 소식이 아주 없거나, 연락이 오기로 한 사람에게서 회답이 오지 않을 때 사용되는 고사성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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